영화 암살을 통한 이질적인 병치- 쇼트와 몽타주에 대한 분석

로트만은 영화적인 요소들의 검토는 쇼트의 분석에서 출발하는 시도를 가진다. 쇼트를 분할할 수도 있고, 자연스러운 인접성과 결합성에 따라서가 아닌, 의미 법칙에 따라서 다른 쇼트들과 결합시킬 수도 있다. 쇼트에서 분절은 새로운 것을 가져온다. 즉 읽기의 질서가 부여되고 구문이 탄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로트만은 쇼트의 연결과 관련하여 이질적인 요소들의 병치에 주목한다. 사실상 에이젠슈테인의 충돌 몽타주 개념을 계승한 이 용어는 로트만에 의하면 세계구조의 문제를 전면 부각시키는 것으로서 한 구성적 매듭이 다른 구성적 매듭으로 비약하는 체계로서 구축된다는 것이다. 영화 암살에서 이러한 이질적 요소들의 병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떠한 의미를 발생시키는지 살펴보자. 여기서 이질적 요소의 병치를 좁은 의미에서 해석하면 쇼트들의 직접적인 연결로 인한 의미 효과를 의미하는 것이고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영화 전체에서 일관되게 대조되는 요소들에 의한 의미 효과일 것이다. 필자는 영화 암살을 통해 이질적인 병치를 인물과 장소의 대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 암살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군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잊지 말자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영화가 처음 시작하는 장면부터 마지막에 이르는 장면까지 삶과 죽음, 선과 악, 야망과 신념, 일본과 조선이라는 수많은 쇼트들의 대비들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특히, 극의 초반부에 강인국과 이완용, 그리고 일본인 총독과의 비밀스럽고 평화로운 모임이 지속되는 장면들 속에서 예상치 못한 폭탄이 터지게 되고 그들의 밀정은 풍비박산이 되는 쇼트들이 극의 서사를 알리는 장면으로 등장하게 된다. 극의 시작부터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의 피 튀기는 혈투가 될 것임을 비밀스럽고 고요한 밀정의 쇼트와 엄청난 폭발음을 자랑하는 쇼트와의 충돌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암살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조선인들의 비참하고 가난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발전한, 활기가 넘치는 도시의 모습들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잔혹성을 백성들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생활들을 통해서 극대화 시켰다면, 영화 암살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가난한 조선인들의 모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도시 가운데서도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하는 젊은 청춘들 있었음을 대비시킴으로써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성은 안옥윤과 속사포, 황덕삼이 비밀 암살 조직단을 결성하고 아네모네 술집에서 춤을 추는 장면에서 극대화 된다. 그곳에서는 모두들 술에 취해 즐겁게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눈다. 춤과 유희에 젖은 대중들의 모습은 일제의 통치라는 암울한 역사의 시대라는 것도 잊어버린 듯하다. 그러한 대중들과 섞여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춤을 춰보는 세 사람의 모습은 웃고 떠드는 대중들의 모습과 대비되어 더 슬프고 가슴 아픈 감정들을 자아낸다. 독립운동을 결의한 사람들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을 느끼는 인간이었음을 알게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관객들은 이들의 목숨을 건 작전이 단순한 개인의 운명이 아닌, 민족의 비극이자 숙명임을 떠올리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암살은 또한 인물들의 대비를 통해서 일제강점기 하에 야망과 신념을 표현하고 있다. 먼저 독립군이었지만 권력 앞에 배신자가 된 염석진과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하와이 피스톨의 대비를 살펴보자. 염석진은 겉으로는 웃으면서 독립군의 편인 듯 하지만 뒤로는 일본군과 내통하며 동료들을 팔아버리는 교활한 인물이다. 처음에 독립운동을 하며 결의에 찬 모습에서 점점 교활하게 변해가는 염석진의 모습을 통해 그 시대상의 인물을 알 수 있다. 반면 돈만 주면 사람을 죽여주는 하와이 피스톨은 안옥윤과 비밀 결사단의 모습을 통해서, 그리고 소녀의 억울한 죽음을 통해서 각성하게 되고 돈이 아닌 신념과 의리를 선택하는 인물로 성장해 간다. 하와이 피스톨을 쫒는 염석진의 모습과 도망 다니는 0 와이 피스톨의 추격신을 통해서 긴장감을 유발하고 관객들은 둘 사이가 어떻게 결말을 맞을지 집중하며 상상하게 된다. 하수구를 통해서 탈출을 꿈꾸는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두운 지하의 하수구에서는 탈출에 대한 희망과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하수구의 창을 열고 발을 내딛은 지상에서는 대기하고 있던 염석진과 일본군의 총격을 무참히 받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일본군과 독립군, 선과 악, 권력과 신념, 지상과 지하의 대조되는 쇼트들의 이질적인 병치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염석진의 승리인 것 같겠지만 염석진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와이 피스톨과 똑같이 총살당하는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염석진의 죽음은 일본의 패배를 상징하기도 한다. 고요하고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염석진의 모습과 주변의 하얀 천의 대비 또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광활하고 적막한 대자 앞에 권력과 야망을 쫒던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또한 인간은 한없이 약한 존재인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와이 피스톨은 돈에서 신념으로, 염석진은 신념에서 권력과 야망으로 성장과 퇴화의 대비를 통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질적인 병치의 극대화가 된 장면이 있다. 바로 안옥윤과 카와구치의 결혼식 장면이다. 안옥윤은 결혼식에서 총독과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려는 계획을 꾸미고 쌍둥이 언니인 것처럼 결혼식에 입장한다. 하얗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결혼식날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워야 할 신부는, 희생당한 동지들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대장이라는 이름으로 부케대신 총을 들고 피 튀기는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아름다운 부케의 꽃 사이로 총이 숨겨져 있고, 그 꽃에서 총알이 발사되는 모습과 하얀 드레스는 이질적인 병치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드레스 사이로 다리에서 총알을 꺼내는 장면 또한 아름다움과 비극성이 이질적이지만 필연적임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애초에 결혼식과 총격전이라는 설정 자체가 이질적인 요소들인 것이다. 관객들은 이러한 이질적인 쇼트들의 충돌을 통해 암살이라는 영화가 단순한 액션영화가 아니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사람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임을 깨닫는 과정을 겪게 된다.

<반복>

영화의 어휘와 관련하여 로트만은 반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영화는 이야기인 까닭에 문학 테스트에서 보면 보편적이지만 조형 미술의 세계에서 볼 때에는 독특한 어떤 수단을 지니고 있다. 그 수단은 반복이다. 동일한 대상이 스크린 위에서 반복됨으로써 어떤 운율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며 따라서 대상의 기호는 자신이 가지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것과 구별되기 시작한다.

반복이라는 개념 또한 영화 암살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암살에서 주된 표현방식은 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각 인물들끼리 싸울 때에도 총을 통해 싸우며, 자살을 통해 신념을 지킬 때에도 총을 통해 생을 마감한다. 일제강점기 이 암흑의 시대에서는 총은 무엇보다 중요한 수단이 되며 무기가 된다. 독립군에게 총은 독립운동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생의 무기이자 일본군에 대항하는 죽음의 무기인 것이다. 그러나 염석진을 비롯하여 일본군에게 총은 식민국을 억압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는 살상의 무기이다. 이 총과 총의 싸움의 반복을 통해서 관객들이 암살이라는 제목의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두 번째로 반복이 나타나는 것은 염석진의 모자이다. 염석진의 모자는 그의 나이와 생각에 따라 변화한다. 처음에 독립군이었을 때는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학생의 모자를 착용했다. 그러나 독립군의 대장이자 일본군의 내통자가 되었을 때는 서양의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훨씬 더 세련되고 신사적인 이미지이지만 이면에는 교활하고 사악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결국 동지들의 정보를 팔아넘기고 일본군인의 직함을 받은 염석진은 일본군복을 입고 일본군의 모자를 쓰고 있다. 모자는 곧 권력의 상징이자 염석진의 정체성이다. 염석진의 신념과 정체성에 따라 염석진의 모자가 변하고 있다. 반복되는 모자와 그 변화를 통해 염석진의 내면의 변화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은 일본 국기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태극기가 아닌 일본의 국기가 반복되어 쇼트마다 나타난다. 관객들은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그러한 장면들을 통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일본 국기의 반복은 영화의 배경이 일제강점기임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며 이러한 시각적인 표현으로 인해 그 때의 굴욕과 치욕을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일본 국기에 경례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치욕과 굴욕의 역사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독립군에 대한 자긍심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매체가 되기도 한다.

<암살의 분석, 그 마지막에 대하여>

암살은 이질적인 병치의 대비와 반복을 통해 일제강점기 시대의 비극을 영화의 언어인 시각적인 언어로써 잘 표현해내고 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각 장소와 인물들의 대비를 통해 그 시대가 얼마나 암울하고 비극적인 시대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영화의 제목인 암살이라는 것이 독립군만의 사명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성찰하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 이 땅에서 일제강점기 시대의 역사를 배울 때, 치욕과 굴욕의 역사가 아닌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배울 수 있게 해주신 독립군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요즘 티비를 틀어 채널을 돌려보면 연예인 가족들이 홍수처럼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몇 가지 채널만 돌려봐도 그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육아예능, 연예인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해외로 여행 보내는 예능, 연예인 자식들을 둔

부모님이 나오는 예능까지 정말 다양하게 나온다. 물론 처음에는 연예인들의 가족들이 나왔을 때 신선했다. 화려하고 찬란한, 말 그대로 밤하늘의 별 같은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 딸 또는 엄마, 아빠의 모습으로 티비 속에 등장하니깐 친근했었다. 하지만 그 친근함도 잠시였다. 점점 그들의 화려한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 예쁘고 비싸 보이는 옷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아가 일반인들이라면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겨우 휴가를 내서 가야할 해외여행을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가는 것들을 나는 접하게 되었다. 더 이상 그들의 삶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들의 가족들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tvn에서 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예능을 보게 되었다. 이 예능의 장소는 우리가 평소에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길거리이다.

진행자가 그냥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나 퀴즈를 낸다. 그 사람이 퀴즈5개를 다 맞추면 상금을 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내가 이 예능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소재가 정말 신선해서 이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대화를 하면서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낸다. 또 운이 좋게 퀴즈를 다 맞추면 100만원이 주어진다. 나는 가끔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면 어떨까?’ 라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 예능은 어쩌면 헛된

상상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의 꿈을 실현시켜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행자가 개그맨 유재석이라는 점에서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유재석은 평소 바른 이미지와 친근한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유재석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MC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유재석은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국민 MC다운

진행 실력을 보여줬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서부터 몇 십년동안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한 어르신까지 각 세대에 맞게 진행방식을 달리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방송을 해 본적이 없는 시민들이라서 다소 긴장하여 질문에 맞지 않는 대답을 할 때에도 유재석은 당황하지 않고 재치 있게 이어나갔다.

게다가 개그맨 조세호와의 케미를 더 해 보는 사람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연예인들의 가족 예능이 대다수인 요즘 유 퀴즈 온 더 블록은 시민참여형 로드쇼라는 새로운 길을 나아갔다. 시민참여형 예능, 자칫하면 민폐가 되거나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방식이다. 그 예로는 시민들의 집에 들어가 밥 한끼를 얻어먹는 예능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시민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연예인이지만 실제로는 처음 보는 사이인 사람이 대뜸 밥을 같이 먹자고 한다. 거기에 더 나아가 밥을 대접하는 것이 아닌, 밥을 대접해 달라고 한다.

그것도 시민의 집 안에서 말이다. 시민이 허락한다면 많은 카메라와 스텝들이 집안에까지 들어와 촬영을 한다. 이런 것들은 다소 시민들에게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허락한다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과 요리 실력까지 보여주어야 하니깐 말이다.

만약 거절한다면 그들은 연예인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허락을 해도, 거절을 해도 시민들에게 조금은 부담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다르다. 일단 길거리에서 진행이 되니 시민들은 자신의 많은 것들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또 가벼운 대화로 이어나가기 때문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퀴즈를 맞추면 100만원을 현장에서 바로 지급해 준다.

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아마 이 퀴즈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즐겨볼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오래하기를 바란다. 또 여러지역에 조금더 다양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신선한 시민참여형 예능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1. 로저스의 인간에 대한 이해

로저스의 인간중심치료에서 주요한 핵심은 인간에 대한 그의 진실한 관심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저스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부터는 로저스의 핵심 개념들의 의미를 통해 로저스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살펴볼 것이다.

로저스는 인간 본성에 대한 기본적인 견해로서 자기실현을 향한 인간의 경향성을 전제로 한다. 이는 유기체가 자신을 유지하거나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의 모든 능력을 개발하려는 선천적인 경향성”(Rogers,2009,p.196)을 말하며 인간이 가진 유기체적인 본성중의 일부라고 본다. 그는 이것을 실현경향성(theactualizing tendency)’이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서 로저스가 말하는 유기체란 무엇일까? 유기체, 즉 전체로서 개인은 모든 경험의 소재이다. 로저스가 경험은 나에게 최고의 권위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유기체의 경험을 중요시하였다. 경험은 주어진 순간에 유기체 내에서 진행되는 잠재적으로 자각에 이용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경험의 전체가 현상적 장을 구성한다. 로저스의 인간 이해를 위한 철학적 입장은 현상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현상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대상 혹은 사건 자체가 아닌 개인이 대상 혹은 사건을 어떻게 지각하고 이해하는 가이다. 현상학적 장은 경험의 전체를 의미한다. , 경험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개념이 아닌 개인에게만 알려질 수 있는 독특한 자신의 참조 틀이며, 개인의 행동의 방식은 외적 현실인 자극조건이 아니라 자신의 현상적 장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실현경향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저스의 성격이론에서 핵심적인 구조적 개념인 자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저스는 개인은 외적 대상을 지각하고 경험하면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자아는 현상학적 장내에 존재하며 불안정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실체라는 점에서 과정으로서 자아를 강조하였다. 로저스의 자아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자아는 개인 내부에 있는 작은 사람이 아니다. 개인은 행동을 통제하는 어떤 자아가 아닌 현상적 장의 일부로서 조직화된 일련의 지각인 자아를 가진다. 둘째, 자아로서 알려진 경험과 지각의 패턴은 일반적으로 자각이 가능하다. , 자아는 일차적으로 의식적이다. 로저스는 이상적 자아와 실제적자아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이상적 자아(ideal self)는 개인이 그렇게 되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자아개념이고 실제적 자아(real self)는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말한다. 이 둘의 상위가 크면 클수록 적응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실현화 경향성은 무엇일까? 유기체는 하나의 기본적 경향성과 추구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경험하는 유기체를 실현하고,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것이다. 유기체가 가진 실현화 경향성은 타고난 것으로 개인이 가진 모든 생리적 및 심리적인 욕구와 관련된다. 실현화 경향성은 단순히 유기체를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성숙의 단계에 포함된 성장의 모든 국면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변화가 유전적으로 결정되어졌을지라도 유기체의 완전한 발달에 대한 진전은 자동적이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로저스는 인간을 진취적인 존재로 생각했으며 인간의 타고난 잠재력을 실현하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즉 자아를 실현하려는 경향성을 가진 자아실현 경향성에 의해 인간은 자아를 유지, 향상, 실현화 시킬 경향성에 의해 동기화 되어 있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의 성장과 완성을 향하여 그리고 최상의 인간존재성(human-beingness)’성취를 향하여 나아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로저스는 인간 유기체의 실현경향성에 필요한 환경은 존중이며 사회화 과정에서 긍정적 존중이 부족할 때 심리적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한다. 긍정적 존중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가치의 조건화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통해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아동은 그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는 부모의 양육 태도에 따라 가치의 조건화를 형성한다. 아동은 기본적 욕구인 긍정적 자기존중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 자기존중 때문에 가치의 조건화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화된 가치의 조건화는 유기체가 경험을 통해 실현화 경향성을 성취하는 것을 방해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아동은 부모와 같이 의미 있는 대상으로부터 긍정적 자기존중을 받기를 원한다. 부모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아동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 놓는다. 아동은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할 때만 긍정적 자기존중을 받게 되고 착한 아이가 된다. 부모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면 나쁜 아이가 되고 이는 긍정적 자기존중을 얻지 못하게 하므로 아동은 나쁜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자기가 경험하는 사실을 왜곡하고 부정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부모로부터 긍정적 자기존중을 받기 위해 자기가 하는 경험에 폐쇄적이 되어 실현화 경향성을 방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가치의 조건화는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에 주요한 방해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갈등, 불안, 공포 등의 정서적 문제도 가치의 조건화와 관련되어 있다. 가치의 조건화에 따른 행동은 실현화 경향성을 이루려는 유기체의 경험과 마찰을 하게 된다. 이러한 마찰은 위협으로 느껴지며 갈등과 불안을 야기한다. , 긍정적 자기존중을 잃지 않을까하는 위협으로 느껴지고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2.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의 특성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은 현재 진행되는 자신의 자아를 완전히 자각하는 사람이다. 로저스는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the fully functioning person) 은 최적의 심리적 적응, 최적의 심리적 성숙, 완전한 일치, 경험에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의 특성은 정적이지 않고 과정 지향적이다. ,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은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사람으로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이다라고 지적하였다. 로저스가 제안했던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은 경험에 개방적이다. 경험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이 되는 능력은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상황들, 새로운 문제들을 더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해 준다. 두 번째로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은 실존적 삶, 즉 매순간에 충실한 삶을 영위한다. 그들은 경험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자신의 경험이 성격형성의 기본 바탕이 되도록 만든다. 세 번째로,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은 자신의 유기체를 신뢰한다. 충분히 기능하는 인간 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결정할 때 자신의 유기체적 경험, 즉 자신의 느낌을 최우선 자료로 간주한다. 네 번째로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은 창조적이다. 다섯 번째로,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은 제약 혹은 억제 없이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여섯 번째로,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3. 로저스의 성격발달

로저스는 체계적인 성격 발달 단계에 대한 이론을 갖고 있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로저스는 성장의 힘은 모든 개인들 안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자아가 출현할 때 개인은 긍정적 존중에 대한 욕구를 발달시키는데, 만약 타인들에 의한 긍정적 존중에 대한 욕구가 자신의 감정에 맞추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되면 개인은 댜앙한 경험들을 의식 밖으로 내보내게 되고 부조화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근본적으로 로저스에 대한 주요 발달적 관심은 아이가 자아실현을 위한 조화의 상태에서 자유스럽게 성장했느냐 아니면 아이가 방어적이 되거나 부조화의 상태에서 기능하느냐 이었다. 자아의 건강한 발달은 부모들이 아이의 특정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때에도 아이가 충분히 경험하고 그 자체를 수용할 때 이루어진다. , 부모가 아이의 전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 특정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아이가 건강하게 발달한다.

 

4. 성격이론의 적용- 비지시적 또는 내담자 중심의 치료기법

로저스의 주요 관심은 성격의 변화가 일어나는 방법이다. 로저스는 치료에서 중요한 변인이 치료적 환경이라고 믿었다. 만약 치료자들이 내담자에게 현상적인 의미있는 방식으로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세 가지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치료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조력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은 일치성,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공감적 이해이다.

먼저 일치성(진실성)은 상담자가 전문가의 역할을 가장하여 역할 뒤로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고, 상담 관계에서 꾸밈없이 자신의 모습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로저스는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진실성이 치료적 성장을 높이는 태도 중에서 가장 기본 조건이라고 하였다. 두 번째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이란 상담자의 생각, 느낌 또는 행동에 대하여 어떤 판단이나 평가도 내리지 않는 순수한 치료자의 돌봄을 의미한다. 무조건적이란, 아무런 전제나 조건을 달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긍정적 존중은 내담자를 한 인간으로서 긍정적 존재로 대함을 의미한다. 조건화된 가치에 지배되는 내담자의 부정적이고 자기패배적인 순환을 해체할 수 있는 것이 무조건적 존중의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감적 이해는 상담자가 마치 내담자인 것처럼 이란 가정을 결코 잃지 않으면서 내담자의 내적 참조 틀에 의해서 파악한 내담자의 주관적 가치나 감정을 되돌려 주는 것을 의미한다. 경청은 내담자에 의해 경험된 감정 그리고 개인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활동이며 공감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5. 로저스의 성격평가기법

로저스는 치료 상담 회기를 기록하고 자아를 대표하는 모든 단어들을 목록화함으로써 성격을 연구하였다. 특히 Stephenson에 의해 개발된 Q-분류기법(Q-sort)을 사용하였다.

Q 분류기법이란, 인쇄된 진술문으로 된 많은 카드로 이루어져 있다. Q 분류는 자기-기술, 즉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혹은 그 관계가 어떤지에 대해 기술하는 것에 사용될 수 있다.

자기-분류에서 내담자는 자신과 가장 먼 특징으로부터 자신과 가장 가까운 특징에 이르기까지 연속선상에서 정상분포에 따라 카드를 분류하게 된다. 로저스는 그가 강조한 자아를 평가하기 위해 Q 분류기법을 사용하였다. 특히 상담전후에 내담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Q 분류기법에 의해 평가하게 함으로써 상담의 효과를 연구하였다.

 

6. 로저스 이론의 평가

로저스 인간의 개인의 잠재력의 극대화에 기여했다는 점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간은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기본적 동기와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으며 과거에 얽매인 존재가 아닌 현재를 살고 미래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반면,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 경험을 할 때 자기개념과 경험 사이의 불일치를 탐색하여 통찰력을 증대시킬 수는 있지만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 영상은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부모들의 이야기다. 영상은 장애를 둔 딸을 살해한 엄마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엄마는 장애를 가진 딸을 더 이상 혼자서 감당할 수 없어 살해했고 살해한 자신을 자책하고 후회한다. 너무나 비극적이고 참담한 현실이었다. 엄마는 자식이 미워서 살해한 것일까? 아니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정말로 사랑했다. 어쩌면 너무 사랑해서, 그래서 더 현실이 암담하고 막막했기 때문에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발달장애를 둔 부모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자식들을 보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마라톤을 하는 중일 것이다. 엄마는 아이를 죽이고 자신도 따라 죽으려고 자살을 시도했다. 동반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아이는 떠났고 엄마는 남았다.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엄마에게 내려진 벌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내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자격이 될까? 나는 그 영상을 보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면서 안됐다’, 또는 나는 정상적인 수준이라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장애아를 둔 부모와 자식에 대한 교만이고 오만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상은 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들만 담아내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은 엄마들의 이야기는 당면한 현실이 아프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마냥 슬프고 암담하고 침울하지 않았다. 아이를 사랑으로 품고 이겨내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활기찼고 밝았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광수네는 부모님이 밝은 에너지를 가지신 분들이었다. 광수의 아버지는 광수를 보살피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 두시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무역업을 하고 계셨다. 광수의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으로, 광수를 자신의 학교에 다니게 하면서 광수를 보살피고 계셨다. 광수는 키도, 덩치도 컸지만 행동하는 것은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런 광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빛은 사랑스러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장애아를 둔 가정은 우울하고 슬플줄만 알았던 나에게 광수네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아 저렇게 밝을 수도 있구나. 활기찰 수 있구나하는 신선한 충격 말이다. 광수의 어머니는 광수가 라는 글자를 입 밖으로 꺼낼 때 까지 밥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죽을 심정으로 광수에게 말을 시켰다고 했다. 부모의 정성으로 광수가 라는 글자를 말했을 때, 엄마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였을 라는 글자는 광수의 어머니에게는 기적이고 선물이었을 것이다. 광수에게는 모든 일상이 도전일 것이다. 화장실을 가고, 교통질서를 지키는 것들 등등. 광수는 규칙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 끝이 언제일지 얼마나 좋아질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채로 광수와 부모님은 긴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끝을 알고 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끝을 알지 못하는 채로 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는 광수의 부모님을 보면서 세상의 어떤 부모님보다 강하고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를 가진 아동들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공격할 생각이 없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장애 아동들에게 차갑고 날카롭다. 가장 좋은 사회는 제일 약한 사람이 편안한 사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장애 아동들을 보호할 제도도, 시설도, 시선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특수교육학교를 설립하는 것조차도 반대하고 꺼려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자녀가 장애 아동과 한 반에서 수업을 듣는 것도 싫어한다. 특수아동들은 조금 느리지만 또래들을 모방하면서 자라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의 아이들의 틈에서 섞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특수아동들은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아주 천천히 배우고 있는 중일 것이다. 우리의 눈높이에서가 아니라 특수아동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바라봐 주어야한다. 우리는 기다려 주어야 한다. 아이가 천천히 세상 밖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부모의 마음으로 안아주고 품어주어야만 한다. 장애는 더 이상 부모 혼자만의 긴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장애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어야만 한다. 더 이상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말하는 부모들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장애를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되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학교에서의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특수아동과 같은 시대를 살아갈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학교라는 장에서 선생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어우러져 특수아동에 대한 또래 아이들의 생각을 바꾸고 시선을 바꾸고 행동을 바꿀 것이다. 교사라는 위치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이다. 나의 꿈은 상담 교사이다. 내가 상담교사가 된다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 ‘조금 늦어서 그런 것일뿐. 너희랑 똑같단다라고 말한 영상 속의 서종철 선생님처럼 말이다.

또한 우리가 장애를 함께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은 장애아동들에게 혼자서 자립할 수 있는 기술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아동 부모님들의 공통적인 걱정과 근심은 자신이 죽고 난 뒤 혼자 남겨진 자식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일 것이다. 부모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자식을 보면서 숨이 턱 막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사회는 혼자 남겨진 자식이 혼자서도 생존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혼자 남겨지지 않게 해주면 된다. 일본의 도토리집처럼 말이다. 일본의 도토리집은 총 2가지 이상의 장애, 즉 발달장애와 다른 유형의 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이 도토리집의 에미라는 여성은 발달장애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른 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빵을 구울 수 있는 기술도 가지고 있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엄마는 이제 에미에게만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다. 우리나라에게도 이런 도토리집이 필요하다.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주고, 기술을 가르쳐주며 장애아동들이 혼자서 자립할 수 있게 해주는 시설과 단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2, 3의 에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상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은 엄마들이라는 문구를 제목으로 내걸었지만 사실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은 엄마들을 더 이상 만들지 말자라는 취지는 아닐까? 장애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우리 사회 전체가 도토리집이 되어야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영상 속의 사람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그들이 삶을 돌파하는 모습들, 태도들을 보면서 우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슬프고 비참하지 않단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특수아동을 보아도 슬프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동정은 오만이고 교만이었다. 우리는 이제 누구보다 용기 있게 삶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살아내는 세상의 모든 장애아동과 그들의 부모들에게 쉴 만한 도토리집이 되어 주어야한다. ‘라는 글자를 처음으로 말한 광수를 보며 펑펑 눈물을 터뜨렸던 부모님처럼, 우리는 느리지만 천천히 성장하는 그들에게 끊임없는 기다림과 감격스러움으로 그들을 대한다면 특수아동들은 느리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성장한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의 목표는 정규직이 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의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기업 비정규직 비율은 3년째 증가하고 있다. 비정규직, 사전에는 이렇게 정의 돼 있다. 고용인이 특정한 기간 내에 고용주를 떠나기로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또는, ‘조건 없이 반품 가능한 인력 렌탈 서비스. 일은 정규직처럼 정기적으로 하는데 정규직으로 인정을 못 받는다.’ 라고 되어 있는 곳도 있다. 후자의 정의는 평소 비정규직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았던 내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비정규직에 대해 한 번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비정규직은 기간제고용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로 분류할 수 있다. 기간제고용 노동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임시직, 계약직, 일용직,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이 통계청 통계에서 비정규직이 53%라고 이야기되는 노동자들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에는 파견과 용역, 사내하청, 시설관리, 도급 노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법상의'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사회보험법 등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들이다. 영세사업장 노동자 역시 근로기준법도 부분적으로 밖에 적용받지 못하고, 임금 수준과 고용조건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점에서 이들을 비정규직으로 분류할 수 있다.

도대체 비정규직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로는 IMF 이후 기업들의 구조조정과정을 거치면서 명예퇴직 등으로 쏟아져 나온 퇴직자들이 영세형 창업으로 이어져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가 급속히 확대되어지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우리나라의 산업 및 고용구조를 제조업에서 도소매업, 음식, 숙박업 등 비생산적, 비경쟁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함과 동시에 이 부문에서 대부분의 비정규 일자리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두 번째는 노동유연화를 통해 비정규직이 확대되었다. 이때 비정규직은 특정 산업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업과 제조업 모든 분야에 걸쳐 노동조건과 임금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창출하였다. 이는 시장소득의 불평등을 낳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총 취업자수에서 비정규직인 기간제와 시간제노동의 비율은 1983-19879%에서 2002-2006년에는 32%나 증가하였다. 세 번째, 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을 확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비용절감과 인력조정 용이성이다. 이때 기업은 기업 특수적 인적자원 투자를 적게 요하는 직무, 그리고 매출액 변동 대비 고용 탄력성이 비교적 높은 직무에 비정규직 인력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네 번째, 노동공급의 측면에서 노동력의 교육수준의 변화, 경제활동참가율의 증대, 이주근로자의 증대 등을 들 수도 있다. 여성 및 중 고령자의 노동시장 진입확대와 전반적인 고학력화 추세는 이들 인구집단을 중심으로 비정규 노동의 확대를 초래하고 있고, 노동의 국제적 이동이 증대됨에 따라 이러한 기피 업종이나 직종에 대한 외국인 노동자의 비정규 고용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이유는 다양하게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우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차별적 대우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별적 대우에는 사소한 것부터 큰 것 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금품의 지급에서 차별을 느낄 수 있다. 근무복, 명절 선물, 건강검진, 경조사 물품 등, 정규직에겐 명절 선물과 상여금을 지급하면서 비정규직에겐 선물세트 하나 주고 끝내는 경우도 많다. 시설의 이용에서도 차별은 존재 한다. 구내식당, 통근버스, 보육시설, 주차장, 기숙사, 체력단련 시설, 휴게실 등을 이용을 할 때 복리후생 시설이라고 해서 쓰려고 하면 비정규직이라고 눈치를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휴가에서 까지 차별을 한다고 한다. 법정휴가는 비정규직도 지켜야 하지만, 그 외의 명절 휴가나 경조사 휴가 등은 정규직에게만 허용하고 비정규직에게는 불허하는 곳도 있다. 그 외에 회식 참여 불가, 업무 중 지급되는 간식의 차별지급, 예를 들어 커피를 주더라도 정규직원들에게만 준다든지 등 다양한 종류의 차별적 처우들이 존재했고, 실제 행해지고 있다. 비록 작은 거라도 사소한 거 하나에 상처를 받고 섭섭함과 서운함을 느끼는 게 사람이다. 이런 차별적 대우가 많은 사람들이 정규직을 되고자 하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이 겪고 있는 큰 문제점은 바로 고용 불안이다. 이들 기간제노동자들은 노동 기간을 사전에 정하게 됨에 따라 노동계약 기간 만료에 따른 재계약, 또는 신규 일자리 구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항상적인 고용불안을 경험 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 한 일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게 되면서 숙련 등 인적자본 형성기회의 박탈과 비정규직 고착화가 되었다. 이처럼 고용불안과 잦은 이직으로 인해 비정규직은 숙련 형성 등, 노동자 자신의 인적자본을 형성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숙련 형성은 대체로 고용을 전제로 한 기업 내 숙련 형성 시스템을 지니고 있어서 한국 사회 비정규 노동자들은 기업 내 숙련 형성기회 에서도 상대적 박탈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잦은 이직과 반복적인 실업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숙련도가 낮을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낮은 인적 자본, 축적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이들의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2007년부터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이 있다. 1997IMF 이후 급속히 늘어난 기간제 근로자 및 단시간근로자 등의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하고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동위원회법'이 이에 해당한다. 비정규직 보호법의 핵심은 첫째,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것과 둘째, 동일업무동일처우의 기본 원칙에 따라 정규직과 동일 업무를 맡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한 차별시정제도다. 2007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비정규직 사용 기간 제한 규정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200971일부터 2년 제한 규정이 적용되면서 사업주가 2년이 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해 주는 대신 2년이 되기 전에 근로계약을 파기하는 편법을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 한다. 또 이 법은 무기계약직을 등장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각 회사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을 대비해 마련한 '무기계약직'에 대한 고용규정은 현장근무 경험이 많은 노련한 인력을 10년이 지나도 같은 월급에 부려먹을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경력 10년차의 직원 월급이 10년 전과 똑같고 전혀 오르지 않기도 한다. 과연 비정규직 보호법은 정말 비정규직을 보호 하고 있는 지 의문이 든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해결방안은 정말 없는 것 일까? 네덜란드의 경우 비정규직의 나라라고 불린다. 매우 높은 비정규직에도 불구하고 빈곤율은 자유주의 국가들에 비해 낮은 것은 네덜란드 비정규직이 차별이 없고 상대적으로 높은 복지수준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 네덜란드는 탈상품화의 도전을 서비스업 확대, 노동시장 유연화, 차별금지, 높은 복지수준으로 대응하여 높은 고용수준을 회복하면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네덜란드 사례를 보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비정규직이 대부분을 차지 하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은 나라, 비정규직이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그들이 차별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위해 그들의 입장에서 정책을 펼치고 그들을 먼저 생각하는 나라, 비정규직이 살기 좋은 나라, 어쩌면 우리나라도 이런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나는 우리나라도 이런 나라가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먼저,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기본권을 위한 법과 제도가 충분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가 한다. 그 방법으로는 첫 번째,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 등 보호제도가 비정규직에게 실질적으로 적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두 번째,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이다.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인해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임금지급 능력이 향상되면 노동관련 법규의 준수가 쉬워지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세 번째, 정부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직업능력 및 업무수행능력 제고 프로그램 제공 등 각종 지원을 강화해 나가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네 번째, 경영계도 정규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직무급 체계를 도입하는 등 정확한 직무분석을 통한 객관적인 근로조건 결정시스템을 도입하도록 하여야 한다.

법과 제도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법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사람들의 노력이다. 비정규직도 하나의 사람으로서,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해야한다.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일수도 있지만 이 말 조차도 잘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은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먼저,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우리들의 인식 개선이다. 비정규직이라고 하면 사회적 약자로 보거나 안타깝게 생각 하는 등 좋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부정적인 시선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개선을 하기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1년이 걸릴 수도 있고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더 나가 30년이 될 수도 있고 50년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중간에 쉽지 않다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계속 노력하는 것이다. 법과 정책, 제도 로, 사람들의 노력과 인식으로, 끊임없이 앞으로 나가야 한다.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힘들겠지만 다 같이 조금씩이라도 함께 한다면, 대한민국도 비정규직이 살 만한 나라, 비정규직을 위한 나라, 비정규직의 나라가 될 수도 있다고 확신한다.

 

 

5. 다문화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매매혼을 통한 국제결혼에서 신랑들은 대부분 경제능력이 부족하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때문에 결혼 후에는 더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외국인 여성에게 일자리를 쉽게 내주는 곳이 많지 않을 뿐더러 임금도 차별적으로 지급하고 있어 부부가 함께 가정을 일으켜나가기 어렵다. 너도나도 아이에게 가진 것 모두 쏟아 붓는 사회에서 아이에게 변변한 옷 하나 못 해 입히고, 다른 가정 아이들처럼 학원공부나 문화체험 등을 시켜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문화가정의 실태 조사결과 이주여성이 한국에서 생활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언어습득 곤란(45.3%)을 꼽았고, 이어 경제적 곤란(13.8%)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박대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의 농촌의 다문화가정 실태와 정책방향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농촌(·)에 거주하며 농사짓는

다문화가정 400가구에 대한 면접조사 결과, 농촌 다문화가정의 53.4가 연간 가구소득이 2,000만원 미만으로 조사됐다. 2007년도의 전국 농가 평균소득이 3,1976,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농촌 다문화가정의 대부분(94.9)이 전국 농가 평균소득에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또 농촌 다문화가정의 78.8가 농지(·) 2미만을 소유해 영농기반이 취약하고, 평균 농지 소유면적은 1.6(4,838)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다문화가정의 낮은 소득은 그들이 우리사회에 적응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6.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교육문제

 

다문화 가정의 80%이상이 농어촌 지역에 거주하기 때문에 도시의 일반가정에 비해 교육수준이 떨어진다. 또한 부모가 맞벌이인 경우가 많아 방과 후에

 자녀의 학습지도를 해 줄 사람이 없고,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하는 것은 엄두도 못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아동에 비해 학습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데 반해, 학교에서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따로 지도해주거나 방과 후 학습의 기회가 적어 다문화가정 자녀의 교육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교육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언어교육이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말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 유아기에 한국말이 서투른 외국인 어머니의 교육 하에 성장하기 때문에 언어발달이 늦어지고 의사소통에 제한을 받는다. 따라서 언어능력의 부족은 학습부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학년 아동의 경우, 언어 능력 부족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겪게 된다. 무엇보다도 언어장애로 인해 집단 따돌림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학교 부적응 현상이 속출하고, 정상적인 교육이 어렵게 된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일상적인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어지지만 독해와 어휘력, 쓰기,

작문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언어문제는 단순히 의사소통 장애로 끝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학교생활 부적응, 가족이나 이웃 간의 불화 등 여러 문제들이 있다.

 

중도이탈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인해 결국에는 중도탈락 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문화가정자녀의중도탈락률이일반학생에비해초등학생은166, 중학생은222배 달하고있다.

 

7. 국제결혼 중개업자들의 도덕적 문제

 

국제결혼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국제결혼중개업체의 난립, 불법적 영업활동 등으로 이용자들의 인권침해 및 피해사례가 증가하고,

 이러한 국제결혼 관행 및 사건에 대한 외국현지 언론의 집중 보도로 동남아 국가내 반한감정이 확산되고 있다.

결혼을 위한 상담 및 알선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결혼중개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1973년 허가제를 도입한 이래 1993년 신고제로 전환하였다가 1999년 자유업화 하는 등 지속적으로 완화시켜왔으며, 이후 결혼중개업의 불법행위를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무분별한 국제결혼의 성행을 부추겨 왔다.

 

8. ‘신부를 구입하는매매혼의 문제점

 

다문화 가정은 국제결혼으로 형성된다. 여기서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는 국제결혼은 매매혼 형태이다. 국제결혼업체가 중매에 나서 동남아시아 위주로

신붓감을 구해 오는 것으로, ‘대가가 지불된다. 한마디로 외국인 신부를 돈으로 사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소수의 상식이하 국제결혼업체들은 외국인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고 만을 강조한다. 서로 사진만 보고 결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사랑으로 형성되어야 할 가정이 시작부터 물건을 사들이는 것 마냥 소유와 귀속형태로 전락이 되는 것이다

 

9. 결혼이주 여성의 문화적 부적응문제

 

결혼이주 여성들이 한국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 문화적 부적응 문제이다. 특히 한국인 남편들이 외국인 아내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부부 간 문화적 갈등을 자주 겪는다. 남편 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 역시 외국인 아내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경우, 신부에게 일방적으로 한국문화를 강요하면서 정작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화적 이질감에서 오는 외국인 신부의 소외감은 더욱 크기 마련이다.

그리고 외국인 신부들의 언어문제로 인해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 원활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되고, 외국인 신부들이 적응하는데 여러모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해결방안

다문화 사회에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외국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지금까지 외국인 여성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제는 그 시야를 확대하여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온 국민들로 초점을 넓혀야만 한다.

첫 번째, 한국의 영향력 있는 기업 및 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다문화 가정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적극적으로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 예를 들면 대학생들이 많이 참여하는 대외활동 중 하나인 KT&G 상상 유니브나, YMCA 같은 사회단체에서 대학생과 다문화 가정이 함께하는 모임을 주최하는 것이다. 국제 결혼을 한 외국인 여성들은 젊은 여성들이 대다수이다. 그들이 마음을 터놓고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대학생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대학생들은 그들의 문화를 배우면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면 보다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대학생들과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의 멘토링을 시행하는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 및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지 못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에게 대학생들이 재능을 기부하고 멘토가 되어 줌으로써 정신적인 지지자가 되어준다면 외국인 자녀들이 훨씬 더 한국에서 외롭고 힘들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다문화 가정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심리 상담을 시행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타국에서 살아가야하는 외국인들은 외롭고 힘들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심리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또한 필요한 것을 언제든 말할 수 있도록 신문고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반드시 필요하다.

네 번째,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도록, 같은 반에 외국인 학생들을 적어도 2~3명 정도는 함께 선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 유치원 및 학교에 외국인 학생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한 해당 국가의 언어를 할 수 있는 선생님이나 직원을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의 부모가 공지 사항 등을 이해하기 쉽게 해당 국가의 언어로 번역하여 가정 통신문을 작성할 수 있고, 부모의 요청사항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해당 국가의 언어 선생님이 있다면 훨씬 더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다문화 가정이 겪는 문제점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방안들을 살펴보았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단일민족 사회라 칭할 수 없으며 21세기에 접어들어 다양한 민족들과 어울러져 살아가야만 하는 사회에 당면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들과 하나 되어 더 잘 살 수 있는 지를 고려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은 많은 나라들에 빚을 졌다. 이제 우리가 또 다른 다양한 나라들에게 진 빚을 갚아나가야 할 것이다. 다문화 가정은 배척하고 무시해야할 존재가 아니라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야할 또 하나의 대한민국인 것이다.

 

 

 

오늘 날 한국사회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어우러져 있는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다양한 문화들이 어우러져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까? 한국사회의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살펴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선진국과 후진국의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는 상이하게 다르다. 수많은 외국인들 중 가장 멸시받고 차별받는 나라는 베트남, 필리핀, 중국의 조선족 등이다. , 차별의 대상이 첫 번째는 힘없고 경제력 없이 한국에 결혼을 하기 위해 오게 된 여성 외국인들이고 두 번째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이해도 없이 결혼을 하게 된 여성들은 다문화가정이라는 현대 한국사회의 큰 과제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과연 이 다문화 가정이 외국인 여성들, 그들만의 문제 인 것일까? 과연 그들이 만든 과제라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 까? 지금으로부터 몇 십 년 전 우리나라 또한 다른 나라의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의 선진국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 지금 당면한 다문화 사회의 문제들을 회피하고 억압한다면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의 진 빚을 다 갚지 못할 것이며, 더 큰 선진국으로서의 발전도 도모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한국사회의 당면한 다문화 가정의 문제점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방안들을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다문화가정 부모와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

 

1. 오랫동안 한핏줄 한민족사상을 중요시한 전통 문제

 

한 핏줄한민족이라는 말이 익숙할 정도로 혈통을 중시해 온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관습상 다른 나라 민족과 피가 섞인 혼혈인들은 인격적으로 차별되는 경우가 많았다. 단일민족의 자부심으로 다른 민족의 외국인들을 무시하고, 배척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그 이전부터 외국인들과 함께 살았던 다문화 사회였다.

과연 단일민족을 결정짓는 기준이 단순히 혈통이라면 우리나라는 그 근본이 흔들리고 말 것이다.

이제는 민족의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혈통이 아닌,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민족의 개념 말이다.

현재는 예전보다 혼혈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남의 민족보듯 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2. 가정폭력 문제

 

외국인 여성이 결혼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한국에 오는 것은 국내서 결혼이 여의치 않은 한국남성의 사정과 외국인 여성들의 경제적 욕구가 타협된 결과물이라는 인식이 우리사회에 지배적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 여성들을 '돈 목적으로 결혼하는 사람', 또는 '목적을 위해 위장결혼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고 바라본다. 결혼은 기본적으로 윤리와 경제적 문제가 미묘하게 얽힌 제도지만 우리 사회는 이주 여성들에게 유독 경제적인 잣대만 대고 있다. 이러한 그릇된 인식으로 인해 외국인 아내와 결혼한 한국인 남편들이 의처증을 갖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의처증이 있는 남편들은 대부분 자기 부인이 돈을 목적으로 한국에 왔고 자기와 위장결혼을 했으니까 언젠가는 도망갈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생활기반이 약한 한국인 남편들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아내들에게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 아내를 돈을 주고 사온 신부라는 남편들의 잘못된 사고도 가정폭력의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결국 이러한 편견으로 인해 외국인 아내들은 가정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3. 다문화 가정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 보도

 

최근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대되면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언론보도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언론보도가 다문화가정에 대한 부정적 측면에 집중되면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주 여성들에 대한 가정폭력 문제는 이제 언론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언론 보도 내용은 자칫 대다수의 다문화 가정의 남성들이 이주 여성들에 대한 비인권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될 공산이 크다. 그리하여 다문화 가정이 일반적으로 문제가정의 범주로 규정될 소지도 있다.

정부나 시민단체는 문제가 있는 다문화 가정만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모범적인 다문화 가정의 사례를 발굴하고 시상하는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하고 장려하는 노력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언론이 다문화 가정에 대한 부정적 사례들만 보도하게 되면 결국 국민들은 다문화 가정을 문제가정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대시키기 때문에,

보도에는 그만큼 신중함이 필요한 것이다. 언론이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굳이 국제결혼 가정을 다문화 가정으로 범주화 시킬 필요도 없다. 범주화를 잘못하게 되면 결국 이것은 부정적인 낙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새터민과 조선족, 또는 중국동포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사례이다.

너와 나의 구별은 차이와 차별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다문화의 경우도 단일문화,

단일민족에 대한 차이를 강조하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함축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서 바람직하지 않다.

편의상 굳이 범주화가 필요하다면 다문화 가정 보다는 교차 결혼 가정으로 정의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는 민족과 국가, 그리고 문화와 생활양식의 교류와 교환을 담보하는 의미로 민족과 문화, 국가의 차이와 차별을 넘어서 세계인으로 하나가 되기

위한 상호작용과 관계의 형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4. 다문화 가정 아동의 사회 부적응문제

 

한국사회가 빠르게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다문화가정의 자녀 문제가 심각하다.

다른 외모와 언어습득 지체, 학습 부적응, 또래 아이들 무리에서의 이탈 등으로 이들은 교육적 정신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

극심한 정체성 혼란과 함께 정신적 질환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의 관심은 부족하다.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머지않아 한 가정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으로 커다란 후유증을 낳을 것이란 예상이 어렵지 않다.

그간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은 주로 이주 여성들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들어서야 아이들의 학교 부적응 등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는 사이 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서 흔히 말하는 왕따를 당하고 학교와 학업에서 낙오되며 심한 경우 정신질환으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부모의 이혼 등으로 정상적인 가정의 상태를 벗어난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상황이 더더욱 열악하다.

엄마로부터의 학습이 발달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유아기부터 정상적인 언어 습득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다문화가정 학령기 아동 24,867명 가운데 24.5%6,089명이 정규 교육권 밖에 있다는 조사 결과는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제조업은 영원한가는 에몬 핑글턴의 제조업에 대한 애정과 희망이 넘치는 책입니다.

에몬 핑클턴이 이 책을 쓰면서 기본적으로 밑바닥에 깔아두고 시작한 관점은 미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제조업이 발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를 위해서 <1, 탈공업화산업 vs 제조업>에서는 탈공업화산업의 문제점과 하이테크 제조업의 이점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2, 탈공업화산업은 이것이 약하다>에서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 금융, 영화산업을 통해 구체적인 탈공업화산업의 문제점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3, 진화를 계속하는 제조업>에서는 전자공학 산업, 조선섬유제철,

그 밖의 미래의 새로운 제조업 분야를 통해 제조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 했고,

 <4, 제조업의 르네상스에 대해서>에서는 탈공업화산업이 계속될 경우 미국경제의 악화 가능성을 이야기 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제조업의 발전과 첨단제조업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제조업을 지키기 위한 행동지침에 대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가 인터넷, 컴퓨터, 금융을 중심으로 한 탈공업화 시대라고 하는데 정의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탈공업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오늘날 첨단산업의 결정체로 탈바꿈한 제조업이 가진 가능성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자 또한 이 책을 쓴 목적을 탈공업화 산업과 소위 첨단제조업의 소위 첨단제조업의 경제성의 이점을 비교 고찰하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그 비교를 탈공업화산업의 중심에 있는 미국과 제조업의 절대강자 일본을 통해서 검증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탈공업화산업 위주로 국가정책을 몰고 가는 것에 대한 비판과 경고가 그 내용입니다.

탈공업화산업의 대표적인 것은 소프트웨어산업, 금융, 인터넷사업 등이다. 저자의 주장으로는 탈공업화산업은 무역수지를 개선하지 못하고,

자국 내 고용을 늘리지 못하는 단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오히려 소프트웨어산업은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에게 비해 미국의 기술자가 불리한 조건에 있다고 말합니다.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된 지금, 오히려 인건비가 싼 개발도상국이, 무형의 가치를 생산하는 데는 더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제조업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하는데, 일반 단순 조립 제조업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자본집약적, 기술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말합니다. 이러한 제조업은 너무도 자본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이라 진입장벽이 너무 높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에서는 함부로 시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제조장비 산업이나 전자 부품 산업 등의 예를 들 수 있겠고, 이탈리아의 방적 산업도 자본집약적이기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드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같은 곳에 존재하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조업은 다수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타당한 얘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이 쓰인 시점이 1999년이라 아직도 이 관점이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아직도 전 세계 선진국들은 탈공업화 산업으로 달려가는 듯한 분위기인데,

 이 책에서 말하듯이 매스컴의 의도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소비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이 남아있고 오히려 제조업은 친환경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고 이것이 또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장이 지금도 소수의 주장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장이 더 솔깃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제조업은 지금에 있어서는 틈새시장이 존재하는 곳이 아닐는지, 제조업 하면 막연히 사양 산업이라고 느끼고 있었는데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또한, 에몬 핑클턴은 이 책을 통해서 미국의 경제인들에게 탈공업화산업만이 미래를 발전시킨다는 생각을 떨쳐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위해서 제조업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필자가 미국의 경우에 치중하여 역술한 점도 있지만 이 문제점은 이는 비단 미국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확실히 탈공업화산업국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제조업을 등한시하고 정보산업이나 IT산업에 많은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컴퓨터, 오락, 소프트웨어, 금융 등 굴뚝 없는 산업이 우리의 미래 발전에 더 큰 보장을 해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탈공업화산업이 고용수에 비해 이익은 더 많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실업률의 증가라는 부가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산업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학력의 엘리트들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당연 실업자가 될 것입니다. .

또한 이보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제조업에 대해 너무 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조업이라 하면 3D업종이라 생각되어 멀리하고 등한시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또 다른 문제점이 야기됩니다. 국내 제조업이 해외로 진출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국내의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임금이 다른 탈공업화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는 인권비의 증가를 초래합니다. 이렇게 국내 인권비의 증가와 국내 제조업의 해외진출로 인하여 결국은 국내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입니다.

에몬 핑클턴은 이 책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첨단제조업의 발전을 이야기했고,

탈공화산업과 첨단제조업의 균형 있는 발전이 필요하다고 역술했습니다. 나도 이 생각에는 찬성합니다.

컴퓨터, 오락, 소프트웨어 등 굴뚝 없는 산업도 결국은 실체가 있는 제품이 있어야 팔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연구, 개발, 정보산업도 중요하지만 이를 상품화하기 위한 제품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컴퓨터 CPU의 개발을 했다고 해도 이를 팔기 위한 제품이 없다면 어떻게 이윤을 얻을 수 있겠는가,

또한 이렇게 첨단제조업이 발전하게 되면 탈공업화산업의 발전에 따른 실업자들의 고용창출이 늘어나고,

고용이 늘어나고 산업이 발전하면 국내 소득도 신장하게 됩니. 필자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제조업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나열했는데 나는 이를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국민들의 관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조업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은 나조차도 그 전에는 제조업에 대해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조업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 인식이 바뀌게 된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국가의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존중 받아야할 제조업, 제조업은 영원한가에 대한 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나가아할 영원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1010일에 제주도에서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이 열립니다. 해군 국제관함식이란 세계해군이 대한민국에 모여 화합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축제의 장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은 10년마다 열리는 것입니다. 10년마다 열리는 것만큼 많은 준비와 노력을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제관함식이 열리기 전부터 좋지 않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일본이 욱일기를 달고 대한민국의 땅인 제주도에 들어오겠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민국 해군은 욱일기 대신 일장기와 태극기를 함께 달고 참가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일본은 오히려 우리에게 비상식적이며 예의가 없다라고 반발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뻔뻔스러운 행동으로 과거 논란이 되었던 사건이 또 있었습니다.

2012년 영국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이때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을 이기고 동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박종우선수를 기억하십니까?

세레머니로 독도는 우리땅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가 메달시상식에도 나가지 못하고 동메달 박탈 위기에도 처했습니다.

다행히도 박종우선수는 메달을 박탈당하지 않았지만 400여만원의 벌금과 A매치 두 경기 출전정지의 징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 땅을 우리 땅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참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일본은 자신들의 치욕적인 과거 역사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시민들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욱일기를 들고 응원을 하거나 심지어는 자신들의 얼굴에 욱일기를 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 부끄러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한국인 여행객에게 와사비를 가득 넣은 스시를 판매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와사비 테러로 불리며 한 동안 많은 이슈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발생할 때 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도 당하고 왜 지금도 당해야 하는 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그저 정부가 잘 대응해주길 바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바로 불매운동입니다.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을 해보면 우익단체나 다케시마를 후원한다는 기업들이 나와 있습니다.

최소한 그 기업들의 제품을 사지 않는 것이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일본은 우리나라 가까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적어도 혐한논란이 있는 지역이나 가게는 가지 않는 것이 과거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애쓰셨던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제주관함식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우리 해군의 요구에 뻔뻔하게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말해주고 싶습니다. “비상식적이고 예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일본 당신들이야라고 말입니다.

일본이 자신들의 군함에 욱일기를 달고 온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행동은 알 수 있습니다. 불매운동이라는 것이 혼자하면 아무효과가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10,20년 쌓이면 꽤 많은 금액이 될 것입니다. 꽤 큰 금액이 되어도 대기업인 일본에게는 전혀 영향이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겠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누군가의 엄마 아빠로서, 혹은 자녀로서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그 단위가 커지면 일본의 기업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우익단체나 다케시마를 후원한다는 제품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나무들이 모여 큰 숲을 이룬 것처럼  언젠가 큰 숲은 아니더라도 작은 숲을 이룬 모습을 상상합니다.

이글의 목적은 그냥 성적 맞춰 경영학과를 지원하려는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생각하기를 권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고3때 원서 마지막 날까지 가고 싶은 대학도, 학과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아는 언니가 경영학과를 추천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경영학과에 넣어 아무 생각 없이 합격하여 많은 생각을 가지며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벌써 시간이 흘러 4학년 막학기를 앞두고 있네요.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설렘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나만 강의실에서 혼자 떠있는 것 같았습니다.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학과에 대한 별 생각 없이 지원했던 것이 나의 발목의 붙잡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경영학과에 적응하지 못하고 전과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전과도 가고 싶은 학과가 있어야 말이죠. 저는 그렇게 경영학과에 남게 되었습니다.

경영학과에서 제가 유독 힘들었던 이유는 제게 버거운 강의들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경영학과에 들어가면 수학은 이제 안녕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기업회계, 경영수학, 경영통계 대망의 경영과학 등 수학의 연속이었습니다. 문과이었기에 수학을 멀리했건만 대학교 입학하자 수학의 세계가 열려있었습니다. 그중 통계와 경영과학은 진짜 힘들었죠. 교수님을 잡고 물어봐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께 따로 찾아가면서 까지 물어봤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제 자신한테 많은 실망을 한 과목이기도 했죠. 고등학교 때는 나름 상위권이었고 공부 잘 하는 아이로 통했는데 결과는 정말 안 좋았거든요.

무엇보다 경영학과에서 가장 힘든 점은 팀플입니다. 거의 각 과목마다 한 개 씩은 있어요. 저는 아니었지만 한 학기에 팀플4개 정도 있는 지인도 있었어요. 팀플이 나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하나하나 약속 잡고 파트나누고 거기에 발표까지 걸리면 정말 최악이죠. ! 경영학과는 발표과제도 정말 많답니다!

또 저는 외우는 것을 꽤 잘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경영학과 공부는 외워서 되는 것이 아니었죠. 당연히 시험은 똥망했습니다~ 교양으로 간신히 졸업 평균학점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영학과는 거의 하나부터 열까지가 저랑 안 맞았던 것 같아요. 물론 잘 맞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죠! 저는 그렇게 경영학과에 미운오리새끼처럼 4년을 보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꿈 없이 경영학과 넣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시기를 권합니다.

경영학과는 외워서 되는 학과가 아닌 것 같아요. 관련서적도 많이 읽고 신문도 많이 봐서 기본지식이 많이 필요한 학과인 것 같습니다.

사실 부끄럽지만 경영학과 넣은 이유 중 하나가 간지 나서였어요. “너 무슨 과갔니?” 물으면 괜히 으쓱해하며경영학과라고 답하곤 하였죠. 저와 같은 실수를 해서 힘들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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