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을 통한 이질적인 병치- 쇼트와 몽타주에 대한 분석
로트만은 영화적인 요소들의 검토는 쇼트의 분석에서 출발하는 시도를 가진다. 쇼트를 분할할 수도 있고, 자연스러운 인접성과 결합성에 따라서가 아닌, 의미 법칙에 따라서 다른 쇼트들과 결합시킬 수도 있다. 쇼트에서 분절은 새로운 것을 가져온다. 즉 읽기의 질서가 부여되고 구문이 탄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로트만은 쇼트의 연결과 관련하여 이질적인 요소들의 병치에 주목한다. 사실상 에이젠슈테인의 충돌 몽타주 개념을 계승한 이 용어는 로트만에 의하면 세계구조의 문제를 전면 부각시키는 것으로서 한 구성적 매듭이 다른 구성적 매듭으로 비약하는 체계로서 구축된다는 것이다. 영화 암살에서 이러한 이질적 요소들의 병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떠한 의미를 발생시키는지 살펴보자. 여기서 이질적 요소의 병치를 좁은 의미에서 해석하면 쇼트들의 직접적인 연결로 인한 의미 효과를 의미하는 것이고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영화 전체에서 일관되게 대조되는 요소들에 의한 의미 효과일 것이다. 필자는 영화 암살을 통해 이질적인 병치를 인물과 장소의 대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 암살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군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잊지 말자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영화가 처음 시작하는 장면부터 마지막에 이르는 장면까지 삶과 죽음, 선과 악, 야망과 신념, 일본과 조선이라는 수많은 쇼트들의 대비들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특히, 극의 초반부에 강인국과 이완용, 그리고 일본인 총독과의 비밀스럽고 평화로운 모임이 지속되는 장면들 속에서 예상치 못한 폭탄이 터지게 되고 그들의 밀정은 풍비박산이 되는 쇼트들이 극의 서사를 알리는 장면으로 등장하게 된다. 극의 시작부터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의 피 튀기는 혈투가 될 것임을 비밀스럽고 고요한 밀정의 쇼트와 엄청난 폭발음을 자랑하는 쇼트와의 충돌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암살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조선인들의 비참하고 가난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발전한, 활기가 넘치는 도시의 모습들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잔혹성을 백성들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생활들을 통해서 극대화 시켰다면, 영화 암살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가난한 조선인들의 모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도시 가운데서도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하는 젊은 청춘들 있었음을 대비시킴으로써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성은 안옥윤과 속사포, 황덕삼이 비밀 암살 조직단을 결성하고 아네모네 술집에서 춤을 추는 장면에서 극대화 된다. 그곳에서는 모두들 술에 취해 즐겁게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눈다. 춤과 유희에 젖은 대중들의 모습은 일제의 통치라는 암울한 역사의 시대라는 것도 잊어버린 듯하다. 그러한 대중들과 섞여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춤을 춰보는 세 사람의 모습은 웃고 떠드는 대중들의 모습과 대비되어 더 슬프고 가슴 아픈 감정들을 자아낸다. 독립운동을 결의한 사람들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을 느끼는 인간이었음을 알게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관객들은 이들의 목숨을 건 작전이 단순한 개인의 운명이 아닌, 민족의 비극이자 숙명임을 떠올리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암살은 또한 인물들의 대비를 통해서 일제강점기 하에 야망과 신념을 표현하고 있다. 먼저 독립군이었지만 권력 앞에 배신자가 된 염석진과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하와이 피스톨의 대비를 살펴보자. 염석진은 겉으로는 웃으면서 독립군의 편인 듯 하지만 뒤로는 일본군과 내통하며 동료들을 팔아버리는 교활한 인물이다. 처음에 독립운동을 하며 결의에 찬 모습에서 점점 교활하게 변해가는 염석진의 모습을 통해 그 시대상의 인물을 알 수 있다. 반면 돈만 주면 사람을 죽여주는 하와이 피스톨은 안옥윤과 비밀 결사단의 모습을 통해서, 그리고 소녀의 억울한 죽음을 통해서 각성하게 되고 돈이 아닌 신념과 의리를 선택하는 인물로 성장해 간다. 하와이 피스톨을 쫒는 염석진의 모습과 도망 다니는 0 와이 피스톨의 추격신을 통해서 긴장감을 유발하고 관객들은 둘 사이가 어떻게 결말을 맞을지 집중하며 상상하게 된다. 하수구를 통해서 탈출을 꿈꾸는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두운 지하의 하수구에서는 탈출에 대한 희망과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하수구의 창을 열고 발을 내딛은 지상에서는 대기하고 있던 염석진과 일본군의 총격을 무참히 받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일본군과 독립군, 선과 악, 권력과 신념, 지상과 지하의 대조되는 쇼트들의 이질적인 병치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염석진의 승리인 것 같겠지만 염석진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와이 피스톨과 똑같이 총살당하는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염석진의 죽음은 일본의 패배를 상징하기도 한다. 고요하고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염석진의 모습과 주변의 하얀 천의 대비 또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광활하고 적막한 대자 앞에 권력과 야망을 쫒던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또한 인간은 한없이 약한 존재인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와이 피스톨은 돈에서 신념으로, 염석진은 신념에서 권력과 야망으로 성장과 퇴화의 대비를 통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질적인 병치의 극대화가 된 장면이 있다. 바로 안옥윤과 카와구치의 결혼식 장면이다. 안옥윤은 결혼식에서 총독과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려는 계획을 꾸미고 쌍둥이 언니인 것처럼 결혼식에 입장한다. 하얗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결혼식날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워야 할 신부는, 희생당한 동지들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대장이라는 이름으로 부케대신 총을 들고 피 튀기는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아름다운 부케의 꽃 사이로 총이 숨겨져 있고, 그 꽃에서 총알이 발사되는 모습과 하얀 드레스는 이질적인 병치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드레스 사이로 다리에서 총알을 꺼내는 장면 또한 아름다움과 비극성이 이질적이지만 필연적임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애초에 결혼식과 총격전이라는 설정 자체가 이질적인 요소들인 것이다. 관객들은 이러한 이질적인 쇼트들의 충돌을 통해 암살이라는 영화가 단순한 액션영화가 아니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사람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임을 깨닫는 과정을 겪게 된다.
<반복>
영화의 어휘와 관련하여 로트만은 반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영화는 이야기인 까닭에 문학 테스트에서 보면 보편적이지만 조형 미술의 세계에서 볼 때에는 독특한 어떤 수단을 지니고 있다. 그 수단은 반복이다. 동일한 대상이 스크린 위에서 반복됨으로써 어떤 운율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며 따라서 대상의 기호는 자신이 가지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것과 구별되기 시작한다.
반복이라는 개념 또한 영화 암살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암살에서 주된 표현방식은 ‘총’ 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각 인물들끼리 싸울 때에도 총을 통해 싸우며, 자살을 통해 신념을 지킬 때에도 총을 통해 생을 마감한다. 일제강점기 이 암흑의 시대에서는 총은 무엇보다 중요한 수단이 되며 무기가 된다. 독립군에게 총은 독립운동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생의 무기이자 일본군에 대항하는 죽음의 무기인 것이다. 그러나 염석진을 비롯하여 일본군에게 총은 식민국을 억압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는 살상의 무기이다. 이 총과 총의 싸움의 반복을 통해서 관객들이 암살이라는 제목의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두 번째로 반복이 나타나는 것은 염석진의 ‘모자’이다. 염석진의 모자는 그의 나이와 생각에 따라 변화한다. 처음에 독립군이었을 때는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학생의 모자를 착용했다. 그러나 독립군의 대장이자 일본군의 내통자가 되었을 때는 서양의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훨씬 더 세련되고 신사적인 이미지이지만 이면에는 교활하고 사악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결국 동지들의 정보를 팔아넘기고 일본군인의 직함을 받은 염석진은 일본군복을 입고 일본군의 모자를 쓰고 있다. 모자는 곧 권력의 상징이자 염석진의 정체성이다. 염석진의 신념과 정체성에 따라 염석진의 모자가 변하고 있다. 반복되는 모자와 그 변화를 통해 염석진의 내면의 변화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은 일본 국기이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태극기가 아닌 일본의 국기가 반복되어 쇼트마다 나타난다. 관객들은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그러한 장면들을 통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일본 국기의 반복은 영화의 배경이 일제강점기임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며 이러한 시각적인 표현으로 인해 그 때의 굴욕과 치욕을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일본 국기에 경례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치욕과 굴욕의 역사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독립군에 대한 자긍심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매체가 되기도 한다.
<암살의 분석, 그 마지막에 대하여>
암살은 이질적인 병치의 대비와 반복을 통해 일제강점기 시대의 비극을 영화의 언어인 시각적인 언어로써 잘 표현해내고 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각 장소와 인물들의 대비를 통해 그 시대가 얼마나 암울하고 비극적인 시대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영화의 제목인 암살이라는 것이 독립군만의 사명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성찰하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 이 땅에서 일제강점기 시대의 역사를 배울 때, 치욕과 굴욕의 역사가 아닌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배울 수 있게 해주신 독립군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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